우리의 현실에서 '여성을 주제로 한 유교철학에 대한 접근은 대체로 두 가지 의도로 읽히고 있다. '유교를 부정하려는 일종의 반란' 또 는 '여성을 억압하려는 일종의 반동' 이 그것이다. 유교를 여성 억압 사상으로 보는 공통된 전제에 서 있지만 전자는 유교를 옹호하고 보호하려는 자세가, 후자는 유교를 폐기 하려 하는 서로 상반된 지향성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유교의 이론 보완이나 유교의 비판 작업으로 읽힐 수도 있는데 그렇지 못한 이유는 무엇일까. 여기에서 유교가 우리의 역사에서 어떻게 수용되고 전개되어 왔으며, 여성의 삶과 의식에 어떤 역할을 해 왔는가, 되돌아보게 한다.
세계 이해의 특수한 전통을 보여주는 유교철학에 대한 연구는 우리 시대의 역사적 과제를 향하여 열려 있을 때 의미를 가질 수 있다. 그러나 유교 보호와 유교 폐기라는 이원 대립적인 주장 속에는 유교철학을 고정불변의 실체로 파악함으로써 능동적인 인간 의식의 실천과정을 부정하는 세계관이 작용하고 있다. 여성을 주제로 한 유교철학에 대한 연 구는 남녀평등을 향한 현실의 지평에 서서 유교의 여성 억압을 비판하고, 그 비판은 새로운 이론 창출로 이어져야 할 것이다.
유교를 통한 여성철학의 모색은 어떤 형식과 어떤 내용이 우리의 바른 기획이 될 수 있는가, 현실의 기반 위에서 유교의 남녀이론을 재검토하는 것을 출발로 삼는다. 이것은 묵수나 폐기를 결정하려는 것이 아니라 비판을 통한 극복과 계승의 작업이고자 한다. 유교의 인간존중의 정신은 강조되어도 지나칠 것이 없지만 그것으로 과거 우리 여성의 삶을 설득하려 한다면 하나의 강변에 불과할 뿐이다. 또 남녀관계의 유교적 방식을 적출하여 폐기한다면 여성의 인간다움이 회복될 수 있으리라는 것은 이미 추상화된 유교를 말하는 것이다.
유교는 근대화의 과정에서 타도의 대상이 되었다가, 경제성장의 윤리로 새롭게 등장하였는가 하면, 이제는 또 서구 지성들을 중심으로 근대성 극복을 위한 대안으로 타진되기도 한다. 다양한 각도에서 재해석되는 이와 같은 연구동향이 여성을 주제로 한 우리의 논의에 직접 연결될 수 있을 것 같지는 않다. 거기에는 기존의 철학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요청하는 여성의 관점이 포함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 한 동향들은 유교 안에 다양한 논의 가능성이 함축되어 있음을 시사하는 것이며, 특히 근대성 극복을 위한 최근의 논의들은 폐기냐 부활이냐를 넘어선 유교를 통한 대안적 모색을 펼쳐야 함을 보여주고 있다.
여성과 유교의 관계연구에 대한 보편적 이해의 환경에서 이 글은 양비론의 입장을 취할 수밖에 없다. 즉 유교 보호나 유교 폐기의 태도에 거리를 두는 것이야말로 유교의 여성문제에 대한 객관적인 접근을 가능하게 할 것이다. 유교적 여성문제의 근본은 남존여비의 존재론적인 자별에 있으며 희생과 양보의 도덕론을 통해 유지 확대가 가능하였다. 그것은 음양이론과 조화이론으로 정당화되었다. 따라서 유교철학을 통한 남녀 관계 이분의 모색은 음양이론과 조화 이론의 재구성 작업을 요청한다. "공자에 대한 더 이상의 이야깃거리가 남아 있는가?"라는 물음에 대해 '이제는 공자에 대한 여자 이야기가 시작되어야 한다' 라고 말할 수 있다.
유교사회의 남녀관계는 남존여비의 제도와 이념을 통해 구현되었다. 그 존재론적 근거는 음양이론으로 설명된다. 선진시대에 태동하여 진,한 초에 확립된 음양이론은 인간과 사회를 해석하고 사건과 사물을 설명하는 패러다임으로 중국철학의 최고 범주인 (道) 다음으로 일반화된 개념이다. 이 음양 범주의 광범한 적용은 천문, 의학, 지리, 병법, 건축, 예술, 문학 등 구체적 학문에 이르기까지 미치지 않는 곳이 없다. 음양의 범주가 이렇게 광범위하게 사용될 수 있다는 것은 그 자체에 다양한 해석의 가능성을 포함하고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여기서의 관심은 음과 양이 여성과 남성의 특성으로 규정되고 사회 신분적인 가치로 해석되어 봉건사회 질서에 커다란 의미를 제공하게 되었다는 데 있다.
음과 양이 세계에 존재하는 모든 현상의 두 가지 상반된 기본요소 또는 동력으로 설명되고. 남녀와 존비의 가치에 배속되기까지 긴 이론 형성의 과정을 거쳐왔다. 구체적인 현상을 지칭하던 음양이 범주의 확대를 통해 점점 추상성을 지니게 되고 이론화, 개념화되기에 이른 것이다. 이 과정은 음양이 지닌 다양한 해석의 가능성을 보여줄 것이며, 음양 개념의 역사적 의미에 접근하도록 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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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존여비의 유학적 정당화에 대한 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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